일본 여인은 왜 팬티를 입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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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47 신홍일 () 댓글 0건 조회 2,972회 작성일 2009-12-22 15:24본문
사랑하는 동문 여러분
년말이 되었습니다.
대과없는 한해였다는 말이 옳은지 그른지 모르겠으나 한해가 가고 있습니다.
최순규 회장님 수고 하셨구요. 김성호 총무님 한해동안 수고 하셨습니다. 2010년은 건강의 한해가 되세요. 두분과 함께하신 집행부 모두의 수고가 우리 동문의 마음의 고향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강기관 회장님 앞으로 노고가 많겠습니다. 동문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어야 될줄 알고 있습니다.
많은 글을 올려 주셔서 잘 읽어보고 매우 즐기고 있읍니다만
때로는 매아리가 없어 서운하기도 합니다.
한해를 보내면서 읽어보고싶은 글이 있어 올립니다.
일본의 성씨 유래와 우리 성씨의 유래를 한번 비교해 보았습니다.
고대사회는 아무나 姓을 거질 수가 없었습니다. 성은 權力과 富의 상징이었기 때문이지요. 아래 글은 그에 관한 글을 따서 인용했습니다.
우리나라 성씨
신라에서는 王降思想 이라 하여서 왕만이 하늘로부터 내려온 성을 받는다고 하여 왕족만이 성을 가질 수 있었다. 왕항사상은 통일신라 말기에 왕권이 약해지면서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해상무역으로 부자가 된 왕건의 할아버지가 감히 王씨 성을 가진 것이다. 그 후 지방의 세력가인 호족들이 왕족들만 姓을 갖느냐 우리도 갖자하고 너도 나도 성을 갖기 시작했고 후기 통일신라는 왕권이 약하여져 이를 제어하지 못하였다.
왕건이 고려를 창업하자 개국공신들에게 중국식의 姓을 하사하기 시작했다. 그 때 하사받은 姓들이 지금 한국의 대부분 姓들이다. 그 개국공신들이 하사 받은 성들의 始祖들이다(평산 신씨의 신숭겸:신홍일의 37대조임, 파평 윤씨의 윤신달, 안(인)동 장씨의 장정필 등). 그래서 지금 사람들은 그 개국공신들의 35대 내지 40대 손 쯤 된다. 그런데 지금 한국인의 거의 반 정도는 노비의 후손이다. 그러니 개국공신들의 진짜 후손은 몇 %나 될까? 조선 후기(특히 19세기)부터 족보 매매로 성을 갖는 사람들이 증가하기 시작하였고 갑오경장(1895년) 이후에는 법적으로 모든 백성이 성을 갖게 되어 그 때부터 한국 사람들은 모두 성을 갖게 되었다. 어쨌든 이렇게 한국은 姓의 유래가 역사적으로 분명하다.
일본의 성씨
우리 한국과 성의 유래가 매우 다르기도 하면서 또한 그럴 듯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다음 이야기는 일본의 성씨를 비하 하고자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닌의 난이후 100년에 걸친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1500년대 오다 노부나가의 기초아래 도요도미 히대요시가 내란을 종식시키고 도구가와 이애야스가 정치적안정을 정착시키기 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특히 남자들이 전란에 희생되면서 남자의 수가 여자의 그 것에 비하여 너무나 적어져 인구 감소의 문제가 심각하여졌다. 그래서 당시 일본 통치자들은 국가의 인력을 증가시키기 위해 비상수단으로 아이낳기 켐패인을 벌려야 할 정도로 인구가 모자라는 실정이었다. 이에 많은 사생아가 태어나면서 그들 나른대로 사회적 정당성을 부여 받기 위해 성씨를 부여하게 되었고 일본인의 姓중 지명을 뜻하는 것들이 많게 되었다. 야마구찌(山口), 야마모도(山本), 야마무라(山村), 다나까(田中), 마쯔시다(松下), 기무라(木村), 노무라(野村) 등 모두 장소를 뜻한다. 왜 이런 성들이 나왔을까? 그 것은 바로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남자들은 길이든, 밭이든, 산이든 여자를 만나면 성관계를 가져라. 그리고 여자들은 남자들을 무조건 받아들여라. 그러기 위해서는 여자들은 속옷을 입지 마라. 즉 알몸에 기모노만 입어라. 그리고 섹스 행위를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등에는 항상 간단한 침구를 지고 다녀라. 이러한 관습으로 인하여 지금도 일본 여자들은 기모노를 입을 때 팬티를 입지 않는다. 그리고 여자들이 등에 지고 다니던 침구는 지금 기모노의 장식물로 바뀌었다. 산 입구에서 만난 남자하고 사이에서 나온 아이는 야마구찌(山口), 산 마을에서 만난 남자하고 사이에서 난 아이는 야마무라(山村), 밭 가운데서 만난 남자와 사이에서 난 아이는 다나까(田中), 나무가 많은 마을에서 만난 남자하고 사이에서 난 아이는 기무라(木村) 소나무 밑에서 나은 아이는 마쯔시다(松下) 등으로 성이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물론 일본의 정통 가문의 성씨는 엄연히 따로 존재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않될 것이다.
이러한 성씨의 생성 유래는 나라마다 마찬 가지 입니다. 미국은 얼굴이 희니까 화이트, 옷만들줄 안다고 테일러, 대장장이 스미스 등 미국 본토로 이민 오면서 이민국에 이름 등록하면서 서기관에게 보여지는대로 성이 정해진 역사도 있습니다. 일본이든 한국이든 귀천이 분명했고 나름대로 성이란 귀의 상징으로 누구나 성을 갖고자하는 열망에서 나타난 역사적 산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사적 사실 검증은 동문 여러분들이 하기 바랍니다. 장문을 읽어 주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신홍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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