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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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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47 김성호 () 댓글 0건 조회 8,215회 작성일 2011-04-15 19:00

본문

 

[책마을]

유비의 인품에 제갈량의 머리까지

입력: 2011-04-07 17:09 / 수정: 2011-04-08 04:00

송태조 조광윤 조병세 지음 / 태봉 / 544쪽 /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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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의 후덕한 인품,관우의 충절과 천하무쌍의 무예,세상을 놀라게 한 제갈량의 군사전략,조조의 지모(智謀),태평성대를 이룬 당태종 이세민의 경세론(經世論)을 모두 다 갖춘 사람.'

《송태조 조광윤》의 저자는 당나라가 망한 후 군웅이 할거했던 5대10국(五大十國)시대를 끝내고 송나라를 세운 태조 조광윤을 이렇게 묘사한다. 그에 따르면 유비는 어질고 후덕했지만 자신이 덕이 있음을 알리기 위해 쇼맨십을 잘했던 연기자였다. 관우는 명장이었지만 화합하지 못했고,제갈량은 출중한 군사전략가였지만 여러 전투에서 패배했다.

그러나 조광윤은 평생 동안 전쟁에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던 백전불패(百戰不敗)의 전략가요,맹장이었다. 조조는 오직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갖은 꾀를 다 썼지만 조광윤은 부득이한 경우에만 계책을 썼다. 당태종 이세민은 황제의 인척으로 정치명문가의 후예였지만 조광윤은 말단 병사로 시작해 후주의 최고사령관을 거쳐 황제가 됐다. 무장 출신이지만 백성을 나라의 기틀로 여겼고,문관을 우대하며 지식인을 존중했다.

저자는 이 같은 조광윤의 덕목을 높이 평가하면서 그의 성장기와 무장 시절,17년간 송나라를 다스리다 죽기까지의 황제 시절을 복원한다. 그가 중국 6대 명권(名拳)의 하나인 '태조장권'의 창시자요,이소룡이 즐겨 휘둘렀던 쌍절곤의 발명자였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허장성세,유인책,낙타부대 등 기발한 책략으로 전쟁사에 길이 남은 남당정벌을 성공시킨 이야기는 영화처럼 흥미진진하다.

자신에게 적대적인 인물도 능력에 따라 중용한 점,민위방본(民爲邦本)의 경영철학을 구현하기 위해 부역을 최소화하고 상업을 활성화해 경제를 일으킨 점등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역사 전공자가 아니면서도 40권의 《송사(宋史)》 전질을 비롯해 수많은 자료를 비교,검토하며 당태종에 비해 별로 알려지지 않은 조광윤을 불러낸 저자의 노고가 작지 않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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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전략가·인간…송태조 조광윤에게 배운다
    기사등록 일시 [2011-03-31 11:5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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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진현철 기자 = 백성을 나라의 기틀이라고 여긴 민위방본(民爲邦本) 사상을 남긴 중국 송태조 조광윤(927~976)은 가난한 군인의 아들이었다. 집안 덕을 거의 보지 못하고 말단 병사로 시작해 후주의 군 최고사령관을 거쳐 황제가 됐다.

죽기 직전까지 평생 계속된 전쟁에서 상대의 허를 찌르는 신출귀몰한 군사전략으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은 백전불패 군사 전략가다. 민심의 향배에 따른 군의 옹립에 의해 최고가 된 황제이며, 부모를 지극정성으로 공경한 출천대효(出天大孝)의 효자다.

'송태조 조광윤'은 어지럽던 전란시대를 마감하고 중국을 통일해 대평성대를 이룩한 경세가로서의 'CEO 조광윤',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군사전략가 조광윤', 성실하면서도 검소하고 후덕한 '인간 조광윤' 등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 그의 영웅적 삶을 조명했다.

길지 않은 50년 인생동안 질박한 삶의 방식과 어려운 문제들을 쉽게 풀어나가는 조광윤의 지혜를 배울 수 있다. 특정 시대와 특정 장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현재에도 적용할 수 있는 힘이 실렸다.

저자는 조광윤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군사·정치·경영 천재'로 손꼽으며 그의 리더십을 추앙한다.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이 지극한 조광윤이 남긴 정책들을 국가경영의 본보기로 삼을 만하다는 생각이 오롯이 묻어난다. 조병세 지음, 544쪽, 1만5000원, 태봉

agacul@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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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도착하는 날...
 
(조병세)
 

내일부터 시작되는 1년간의 대만(臺灣)생활을 위해 인천공항을 출발하였다. 남들은 외국에서 살다가도 나이 먹으면 머리 누울 곳을 찾아 정든 고국으로 찾아드는데, 나는 이 나이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로 떠나게 되니 마음이 묘하다. 젊은 시절 하와이(Hawaii)대학으로 유학을 떠날 때나 공직에 있을 때 해외출장을 떠날 때처럼 뿌듯한 마음이 들거나 기대감에 들뜰 것도 없다. 다만 나에게 주어지는 오늘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나는 또 다른 곳으로 향할 뿐이다.

 

지난 해 한양대 강의를 하면서 책을 두 권이나 쓰느라고 몸과 마음이 바쁘고 지쳐서 이제 앞으로 1년 동안은 하느님이 안식년(安息年)을 주셨다고 생각하고 편안히 쉬고 싶기도 하다. 그렇지만 나는 그렇게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평생을 일을 만들고 일을 찾아 헤맸던 습(習)이 남아 내가 나 자신을 그냥 놔둘 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상념에 사로잡혀 있는데, 육중한 비행기의 바퀴가 꿈틀거리며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모든 정해진 일은 이렇게 늘 찾아오게 마련이구나. 그래, 대만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정해진 일과 예기치 못하게 찾아올 일들을 맞으러 떠나자.

 

인천공항을 떠나 불과 두 시간 반 만에 타이페이공항(臺北空港) 상공에 다다르니 구름이 첩첩이 쌓여 있어 푸른 바다와 아름다운 섬나라풍경을 감상할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모처럼 운 좋게 창가좌석이 걸렸는데 별 볼일이 없어졌다. 지금까지 해외를 자주 다녔어도 홍콩이 대만보다 멀다고는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실제로는 비행시간이 한 시간정도 더 걸리는 곳이라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공항에 도착하니 서울에서 춥다고 껴입은 옷이 무겁고 무덥게 느껴졌다. 서울은 영하 4-5도였는데, 타이페이는 20도가 넘었다. 입국심사를 받기 위해 지루하게 기다리는 동안 땀이 목줄기를 타고 흘러 내려와 두터운 겨울옷을 적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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